드디어 기다리던 등반 당일. 전날 한 잔만 하고 잔다는 것이 맥주에 하이볼에 안주까지 야무지게 섭취한 우리는 5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고 얼른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충분히 수면을 취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숙취도 불편함도 없이 좋은 컨디션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가와구치코 역에서 후지산 요시다루트 고고메까지 운행하는 고속버스는 매일 한 시간 간격으로 오는데, 특히 관광객이 많은 요즘은 버스 여러 대가 동시에 왔기에 서서 갈 걱정 없이 갈 수 있어 편리했다! 우리는 당일치기로 다녀올 목적이었으므로 가와구치코 역에서 출발하는 스바루라인 첫 차 (6:40 출발)를 탑승하기로 결정했다. 후지산에서 다시 돌아오는 스바루라인 막차가 18시 45분이었으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등산과 하산을 합해 약 10시간 반 정도 뿐이었다! (요시다 고고메 8시 출발 ~ 여유를 두고 18시 30분 까지는 하산하기로!)
우리는 6시쯤에는 이미 숙소를 나와 미리 버스를 대기했다. 한창 등산 시즌이라 우리가 줄을 선 뒤로 사람들이 쭉 줄을 서기 시작했는데, 빨리 도착하는 것이 빨리 등산을 시작할 수 있으므로 가능하면 조금 일찍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 듯. 주위에 편의점도 있으므로 혹시 간편식 등 전날 미처 구매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편의점에 들를 시간도 생기므로 미리 나오는 것이 좋아보인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한 외국인 중년 커플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마지막 버스 배차 시간이나 등산에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가 등의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초행길이라, “아마 10시간 쯤 걸릴걸요..?” “아마 18시 45분이 막차 맞을걸요..?” 등 가정으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비슷한 시간에 등산을 해서 그런지 하산길에 한번 더 만나 후지산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외국 산에서 같은 시간에 함께 등반한 사람들과 웃으며 대화할 수 있었던 즐거운 경험이었다!
후지산 고고메에 내려 본격적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등산 당일 일기예보에 비가 내릴 거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시작 지점부터 조금씩 비도 내리고 시야가 안개가 앞을 가려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근처에 화장실과 카페 등이 있으니 등산 전에 한 번 들렀는데, 후지산 내의 화장실을 200엔 또는 300엔을 지불하고 이용할 수 있으므로 웬만하면 시작 전에는 화장실에 다녀 오는 것을 추천. 출발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입장권을 교환하여 등산길에 올랐다.
후지산 고고메 입장권은 현지 결제 또는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가 가능하다. 후지산을 찾는 등산객이 많아진 요즘, 조금 늦은 시간에 등반을 시작하려면 인원 제한으로 인해 들어가지 못할 수 있으므로 가능하다면 온라인으로 예매하는 것을 권장한다. 또한 16시 이후에는 입장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1박을 생각 하더라도 조금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정상까지 잠깐 잠깐 휴식을 취해가면서 천천히 등산을 진행하였다. 등산 당일 전까지 유튜브나 블로그 등을 참고하며, ‘이 정도면 나도 금방 다녀오겠는데?’ 하고 조금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오산이었다. 5고메~6고메까지는 금방 간다는 포스팅과 유튜브만을 믿고 나아갔는데, 생각보다 나타나지 않는 6고메와 다른 산에 비해 완만하다는 경사 또한 나에게는 너무 가파른 길이었으니.. ㅠㅠ 특히 7고메 ~ 8고메는 무슨 암벽 등반하는 기분으로 올라갔는데, 혹시 평소에 운동을 잘 하지 않는데 후지산 등반을 계획 중이신 분이 있다면 최소한 2주 ~ 한 달 전부터는 유산소 운동을 통해 필히 몸을 단련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너무 힘들었다 ㅠㅠ
원래 계획대로라면 넉넉하게 6시간만에 정상에 도달하여 3시간만에 내려오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정상까지는 6시간만에 도달할 수 있었으나 하산하는 데에는 3시간 반 정도가 소요되었다.
날씨가 좋았다가 안 좋았다가, 시야가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해서 처음에는 꽤 고생했던 후지산. 특히 정상까지 어느 정도 남았는지는 커녕 10미터 앞도 분간하기가 힘들었기에,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고전했던 등산이었다. 한국의 산 또는 도쿄의 다카오 산에서 볼 수 있었던 초록의 풍경을 살짝 기대했으나, 워낙 고산지대이다 보니 식생이 존재하지 않았다! 정상에 가까워 질수록 흙과 돌만이 존재하는 투박한 후지산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구름과 하늘을 두 눈으로 바라 볼 수 있었는데, 너무 진귀한 경험이었다. 특히 하늘이 너무너무 깨끗하고 다양한 푸른 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직접 보는 것이 아무래도 최고이지 않을까 싶다!
어느 순간부터는 허벅지와 정강이에 근육통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게 힘들어지는 순간이 온다. 고산지대로 산소가 부족해서 그런지 머리도 지끈거리기 시작하고, 무엇보다 갑자기 쏟아진 비에 날씨가 너무 추워 벌벌 떨기도 했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산 위는 춥다! 반드시 여벌의 옷을 준비해서 등산하는 것을 권장한다. 간혹 반팔 반바지로 등산하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아마 산신령이지 않았을까?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 차림으로는 후지산을 등반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하하호호 이야기를 나누며 올라가는 것을 살짝 기대했으나, 후지산을 등반하는 것은 그야말로 ‘정복’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실제로 한국에서 생각하는 등산과 일본에서 생각하는 등산은 다른 것 같았는데, 일본에서의 등산은 ‘정복’, ‘지배’, ‘개척’과 같은 키워드를 많이 떠올린다고 한다.
실제 이번 등산하면서 본 대부분의 시야는 위 사진과 같다. 그냥 안 보여.. 날씨 꼭 확인하시고 우비도 챙겨가시길!
6시간동안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정상에 도착한 우리. 함께 간 친구들이 없었더라면 분명히 중간에 포기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5고메에서 출발해서 7고메까지 사이에 한 번 탈진할 뻔 한 적이 있는데, 친구들이 내 가방에서 물을 꺼내 들어 준 덕분에 정말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1kg의 무게가 사라진 것 뿐인데 이렇게나 몸이 가벼워 질 수 있다니, 친구들에게 너무나 감사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체력을 반성하게 되었다. 근력운동 뿐만 아니라 유산소 운동도 반드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기다리던 정상에 도착했으나 너무 심한 강풍에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한 채 얼른 하산해야 했다. 엄청난 추위와 바람으로 몸을 가누기가 힘든 정도였지만 어찌저찌 단체사진과 각자 인증샷을 남기고 화장실에서 간단히 하산 정비를 마치고 서둘러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바람이 매우 심했는데, 후지산에서 강풍에 의한 추락사가 발생하는 이유를 바로 알게 되었다. 부디 조심해서 등산하시길!
다시 정상에서 5고메까지 내려오는 길. 정상 부근에서는 정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올라갈 때보다 더 조심해야 했는데, 산 외곽은 그야말로 낭떠러지이므로 산 쪽으로 붙어서 조심조심 내려가야 했다. 그러나 마냥 천천히 갈 수만은 없었던 것은 버스 막차에 타지 못하면 돌아가는 방법을 다시 찾아야 했으므로 조금 서두르기로. (그 덕분에 막차보다 무려 한 시간 전의 버스를 탈 수 있어 저녁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었다!)
하산하며 찍은 후지산에서 내려다본 구름과 하늘은 너무너무 아름다워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이 맛에 등산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세 시간 반을 내려와 우리는 다시 출발 지점이었던 후지산 고고메에 도착할 수 있었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여 근처 이자카야에서 오늘 하루를 돌아보고 맛있는 음식으로 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다리와 발목도 아프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갑자기 속이 안좋아져 (아마 평소 운동량을 상당히 넘어선 활동량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가 없었던 점과, 고산병과 맹추위를 짧은 텀으로 계속에서 겪은 탓에 몸이 상당히 힘들어 했던 까닭으로 추정됨) 고생도 했지만 오늘 하루를 절대 잊지 못하리라.
후지산은 1년 중 개방되는 기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몰려 안전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리라. (참고로 일본에서는 “후지산을 한 번도 안 다녀온 사람과 두 번 이상 다녀온 사람은 바보” 라는 말이 있는데 이번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꼭 몸조심해서 다녀오시길 바라며 다음 이야기는 세 번째 이야기 : 가와구치코 관광 편으로 포스팅을 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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